마지막 연애라니 서와

정이현의 신간 <사랑의 기초: 연인들>을 읽었다. 구입 후 책장에 박혀 있었다. 나도 잊고 지냈다. 아마 이벤트 상품이 탐났거나 추가 마일리지 때문에 곁다리로 주문했던 게 아닌가 한다.

표4의 "정이현이 쓰는 마지막 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이 거슬렸다. 흰색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 풀빛의 고딕서체는 왠지 뻔한 거짓말을 철회하려 들지 않는 아이의 빳빳한 고개를 연상시켰다. 고집할수록 씁쓸해보이는 아이의 단단한 허세 말이다. 마지막이라니, 정이현이 언제 연애소설을 썼던 적이 있었던가?

후배의 주선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이십대 직장인 '민아'와 '준호'. 소설은 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잠시 불붙다 어느덧 서서히 식어가는 감정의 변이를 뒤쫓고 있다. 그렇지만 일상과 세속을 정지시키는 정념의 소용돌이가 깃든 젊은 심부의 내면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가령, 뒤라스의 <연인>이나 김연수의 <설산>,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 같은 풍경 말이다.

정이현의 소설은 그들처럼 가슴 절절한, 그리하여 연인을 잃는 것이 곧 세상을 잃는 것과 같은 그런 사랑이 펼쳐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정이현이 풀어놓는 연애와 사랑이란, 백화점에서의 쇼핑과 동급이거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세상에 안착하려는 약삭빠른 몸놀림, 짱구 굴림의 살풍경이 지배적이다. 예컨대 '유리'(<낭만적 사랑과 사회>)나 '은수'(<달콤한 나의 도시>) 와 같은 속물들의 한심하나 서글픈 속내들.
<사랑의 기초>에서 주인공 '민아'와 '준호'도 정이현의 이전 인물들의 판박이다. 마침내 사랑이 식었음을,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된 두 주인공을 정이현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이별을 위한 연착륙에는 실패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했다."

그러니, 정이현의 주인공들은 단 1센티미터도 자라지 않았다. 평론가 김현이 누군가를 꼽추에 비유했던 것처럼, 성장하지 않는 것은 때론 불쾌하다못해 추한 느낌을 불러들인다. 정이현은 작가의 말에서 "사랑은 오로지 하는 것"이라고 선언했으면서도 그녀의 주인공들은 매번 요모조모 재고 따질 뿐 '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도 있다. '혜미'처럼 갑부집 딸내미는 맘껏 하고, 사랑에 취할 수 있다.) 

정이현도 간파하고 있듯이, "사랑은 오로지 하는 것"이고, 그것도 치명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정이현의 연애와 사랑이 항시 리얼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명성이 그녀의 소설에는, 연애풍경에는 없기 때문이다. 해서 내가 보기에 그녀는 연애소설을 쓴 적이 없다. 알콜 없는 맥주가 더이상 술로 분류될 수 없는 것처럼, 치명성이 제거된, 맹목적 중독과 실연의 절망적 몸부림이 제거된 연애란 더이상 연애도 사랑도 아니다. 연애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정이현의 의도를 지금까지 읽어줘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건 데뷔시절에나 봐줄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그녀의 연애소설이 실감나지 않는 이유는 문체 때문이다. 그녀가 그린 연애와 인물이 공감할 수 없어서나 비현실적이어서가 아니다. 정이현이 그려보인 연애의 풍경은 실상 현실에서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현실에 만연해 있다고 해서 리얼리티가 보장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누군가 그녀의 소설에 말했던 것처럼, 고급 세단을 타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듯한 매끄러운 그녀의 문체가 연애를 담기에는 적당한 그릇이 아닌 것 같다. 진창과 오르막을, 생의 환희와 절망의 비포장 지대를 세단을 타고 가서야 돼겠는가.

이런 정이현에게 들려주어야 할 노래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제격일 듯싶다.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기 때문이지"라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이현의 세계에는 전부를 거는 인간들이 없다. 세속과 일상에 "연착륙"하고 안착하려는 자들에게 사랑은 없다. 우선 허우적거리고 비틀거릴 용기가 있는 자들에게 사랑은 온다.

저무는 봄날, 저물수밖에 없음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이를 떨쳐낼 수 없는 시선은 결국 봄날의 화창과 충만한 기운에서 거듭 우울을, 뒤이어 들이닥칠 허무를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해서 사랑은 어느덧 회색으로 물들어 본연의 색을 잃게 된다. 이러할 때 머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떠난 빈자리이고, 그 빈자리에 울려퍼지는 고요한 우울과 달갑지 않은 고독이다.  

이러한 자에게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고작해야 낭만적 사랑은 허위라고 선언할 수 있을 뿐이다. 허위임을 알면서도 그 주변을 항시, 기웃거리는 자는 자신의 말에 도취된 혹은 자신의 선언에 속는 자이다. 정이현은 봄날을 노래하지도, 저문 봄날을 응시할 줄도 모른다. 그러하건대 마지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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